지나간 KT 세월을 이쉬워하며 심경을 토로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우린 본능적으로 생명의 존귀함을 알고 살아갑니다

어쩜 태어나서가 아니라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우린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의사가 낙태 칼을 들이대면 발버둥치며 태아가 피하려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명도 극도의 혼란이나 스트레스로 본인이 죽어야 하는 경우 스스로 죽는 경우를 우린 종종 봅니다

이른바 자살입니다

이런 자살은 인간의 자율신경계나 이성적판단이, 외부원인으로 종료되었을때 일어난다고 생각됩니다

자율신경계 종료는 농약을 마신 경우인데 식도가 스스로 노폐물에 열리는 경우입니다

판단종료는 20층에서 떨어지는 경우인데 공포증이 사라지는 현상입니다

보통 정상인에게는 실현되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자율신경과 이성적판단이 극도의 외부충격에 작동이 안되는 경우가

어쩜 진정한 자살이기도 합니다만... 인간적으로 본다면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자살확인"입니다

엄격히 형법적으로 보자면 이것은 타살입니다. "자율적 의지"가 없기 때문이지요

왜냐면 이런 사람은 이미 타인이나 외부충격에 의해 사람이 아닌 죽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목멘 경우나 연탄불피운 경우, 수면제 먹는경우가 인간의 자유의지로 자살한 것이니

이것을 형법상 자살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살 유형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고픈 말은 KT근무자중 자살로 이야기되는 사고가 타살이라고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

있고 그런 유형은 이미 앞서 말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충분한 조사와 사회학,심리학적인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우린 인간이 왜살며 왜죽느냐에 대한 더많은 고민을 하여야 된다고 봅니다

왜냐면 인간의 생명은 대단히 존귀하지만.... 만약에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외부충격이 가해져서 생명에 대한 연을 끊어버린다면, 그 외부충격의 주체자가 바로 범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런 심리적인 프로세스를 이용하여 일본이 민비를 죽일려고 수차례 시도하여

왕비로서 견디기 힘든 모욕감과 허탈감을 준 사례도 있었고 이에 실패한 일본이 낭인들을 동원 시해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서 보존하려한 존엄성이 있기에 이것이 파괴되는 경우

자율신경이나 이성적판단이 고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극도의 혼미속에서 자살하지 아니하고 생명을 지킨 사마천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자는 교훈을 보여드리며 이 글을 마감하고자 합니다

 

 

 

먼저 아래 글을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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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말한다. ‘하늘의 도는 특별히 친하게 여기는 대상이 없고, 항상 선인(善人)의 편에 선다.’라고. 그렇다면 물어 보겠다. 백이와 숙제는 선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선인이라고 그대도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토록 인덕(仁德)을 쌓고 고결한 품행을 보여 주었는데도 굶어 죽고 말았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공자(孔子)의 70 문도(門徒) 중에서도 안연(顔淵)은 특히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스승이 추천까지 한 인물인데도, 끼니를 자주 거르면서 지게미와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한 채 끝내는 요절(夭折)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하늘이 선인에게 보답하는 것이 과연 어떠하다고 하겠는가. 반면에 도척(盜蹠)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날마다 죽이고 사람의 간을 꺼내어 먹는가 하면 거리낌없이 포악한 짓을 자행하면서 수천 명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는데도, 끝내는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고는 안락하게 생을 마쳤다. 그는 과연 무슨 덕을 쌓았단 말인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자살은 극도의 자괴감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자괴감이 자율신경과 판단이성을 죽여서 결국 사람이 자살에 이르게 됩니다

하얀 눈처럼 착하게 산 사람에게 죄인.. 그것도 파렴치누명을 씌운 경우...

그것도  그 주도세력이 패륜악당중에 악당이며 , 도저히 세상이 바꿀 기미가 없을 경우

더 나가서 세상사람들이 허위와 날조의 홍보플레이에 진실과 거짓을 혼동하여 날조된 허위를

진실로 숭상하고, 폐륜범인을 의인으로 존경하는 분위기라면 아마 살기 힘들 것입니다

좀 더 나가서 그간에 알고있는 사람들이나 후배, 부하직원들 조차, 힘있는 폭력배에게 빌어붙어

목전의 이익을 쫒아, 날조의 홍위병 역활을 자처 한다면... 이것은 피해 당사자에겐 치명적입니다.

역사는 이런 경우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이런 치욕을 참고, 생명을 보지한 사람이 있습니다

왜? 무엇때문에 그들이 그 치욕을 참고 극도의 혼미속에서 정신을 가다듬었을까요?

아래 내용을 봅시다

 

 

 

 

사마천은 후궁세력인 위청과 곽거병세력에게 모함을 당해서, 한무제 후궁세력에 의해서 죽은 이광의 손자 이릉을 구하다가  사마천 또한 모함에 의해서 궁형을 당한다 . 당시 이광장군은 흉노적이 벌벌떠는 장군이었으나 자결하였다

자결원인은 후궁 위씨의 권세를 쫒아 발호하는 발바리중 이광장군의 아랫사람이 있었는데 직속부하가 위씨권세를 빌어

직속상관에게 빈정거리며 수모를 주자 참다못해 자결한 것인... 비운의 장군이다.

이릉은 가문의 피를 받아 선비족과 싸울때마다 전공을 세웠는데 그를 시기 질투하는 후궁추종자들에 의해 2번의 모함을 받아

결국 반역자로 몰려 온 가족이 살해되는 비운의 가문이다.

사마천이 이렇게 한무제와 후궁에게 대항하려 했으니 그는 사형을 받아도 몇번을 받았을 것인데. 사형보다 더한 궁형을 받고

살아남고, 사마천은 선친의 유업을 달성하기 위해 죽음보다 더한 궁형을 선택하게 된다

 

 

궁형(宮刑)은 오형(五刑)의 하나로서 사람을 강제로 거세(去勢)하여 생식 기능을 상실하게 하는 형벌이다. 사마천으로서는 죽음보다도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형벌에 처해진 이유는 단지 자기의 친구인 이릉(李陵)이 5천 명의 보병(步兵)을 이끌고 흉노(匈奴)의 8만 기병(騎兵)과 용전 분투하였으나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서 화살도 다 떨어져 어쩔 수 없이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투항한 것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었다.

  이릉은 사마천이 존경해 마지않던 장군 이광(李廣)의 손자이다. 이 장군은 흉노가 비장군(飛將軍)이라고 부르면서 무서워했던 한 나라의 명장이었는데, 끝내 전공(戰功)을 인정받지 못한 채 불우한 세월을 보내다가 아랫 사람의 수모를 참다 못해 자결하였다. 사마천의 수모도 결코 그에 못지 않았을 것인데, 그는 죽음을 택하지 않고 살아 남았다. 왜 그랬을까?

  사마천이 자기의 벗인 임소경(任少卿)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죽게 마련이지만, 죽어서 태산보다 중한 이름을 남기는 사람도 있고, 기러기 털보다 가볍게 취급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고 심경의 일단을 토로하는가 하면, “가령 내가 이대로 죽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터럭 하나가 없어진 것과 같을 것이니, 개미나 땅강아지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라는 울분에 찬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그런 하찮은 죽음을 택하지 않고 끝내 살아 남아서 무엇을 하려고 한 것일까?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아닌 자기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확인하려고 하였을까?

 

 

 

사람은 살았으나 죽음보다 못한 극도의 자괴감 속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집니다

이런 극도의 혼미속에서는 지율신경이 죽는다는 것도 말했습니다

이성적인 판단이 고장난다는 것도요.

하늘에 울부짖으며 선과 정의를 외치면 외칠수록 그의 수명이 단축되었던 암울한 시절..

그 시절이 다시 재현된다면...

아니 재현될 필요없이 KT처럼 경영을 빙자한 일부 패거리들이 각종 불법을 져지르면서 , 각종로비를 하면서

그 권세를 빌어 역사에서 진실과 날조를 바꾸려한다면

부와 권세를 누리며 허위와 날조로 진실을 죽이려든다면...

이정도 상황에서 진실의 당사자는 자살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살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저는 사마천의 예를 빌어 말하고자 합니다

주변에서 비굴한 삶, 비겁한 놈.... 더러운 놈... 각종 비난이 후배나 하위직, 친구들이 발바리를 자처하며

사마천을 비웃어도 그는 자결하지 않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살아서 비겁한 세상을 바로 잡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선인이 몰락하고 악인이 오히려 득세하는 세상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도리를 확인시켜 줄 수 있는 공명정대한 하늘의 도가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그나마 조금쯤 위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하늘은 결국에 가서는 선인의 편을 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하늘은 없다. 사람들이 천도(天道)를 곧잘 말하지만, 그 천도라는 것도 결코 옳은 것은 아니다. 백이 숙제와 도척을 보아라. 그리고 지금 전개되고 있는 이 세상의 행태를 보아라. 모든 것은 우연의 소산일 뿐이다.” 윗 글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그런 것이려니 하고 체념하고서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다. 공평 무사한 하늘의 도가 없다고 한다면, 인간인 우리가 혹시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 잘못된 역사를 우리의 손으로 심판할 수는 없을까. 그리하여 끝내는 선인이 승리하고 악인이 패배하는 하늘의 도를 우리가 대신해서 구현할 수는 없을까. 그렇다. 내가 한번 그 일을 해 보리라.” 사마천은 혹 그런 각오를 가지고 궁형을 당한 수치를 딛고 일어서서 《사기》를 집필하지는 않았을까.

  이 추측이 과연 맞다면, 사마천의 의도는 실제로 성공했다고 해도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2천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붓 끝에서 모든 인물과 역사가 여지없이 정죄(定罪)되고 있으니까. 그리하여 역사의 기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것인가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있으니까.

  오늘날에 와서도 사마천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하늘이든 신이든 다른 어떤 귀의(歸依) 대상이든 간에······. 그리하여 분노와 허탈과 무력감과 체념의 고비를 넘기고서 역사와 현실을 조용히 응시하며 홀로 말없이 작업을 하고 있는 사마천의 후예들이 어딘가에 또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오늘, 지금 이순간

땀과 노력으로서 일의 본질을 추구하는 KT직원이라면 그 허탈감과 자괴감에서 많은 고민이 있을줄 압니다

한평생 청운의 꿈을 가지고 KT를 위하여 충성한 직원이면 일수록 비탄에 졎어있을 것입니다

이런 감정은 좁게는 비실비실하게, 좀 넓게는 퇴직으로.... 그리고 안타깝게도 자살하신 분도 계십니다

존경하는 직원분들..

그러나 절대로 퇴직과 자살은 아니라고 봅니다

뜻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굴욕에도 자살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밤..

극도의 고통과 혼미속에서 진리와 정의를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직원이 만약 계시다면,

인생의 새로운 큰 뜻! 생명과도 맞바꿀수 있는 큰 뜻을 세우는 이밤이 되시길 빕니다.

 

 

 

 

자살하지 마시고 새로운 큰 뜻을 세우십시오.

나이 60이 넘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암환자도, 다리가 부러져도,고혈압환자도 얼마든지 큰 뜻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강우규열사는 60이 넘어서 뜻을 세워 일제와 투쟁을 하였습니다

 

 

 

 

 

이릉장군에 대해서 알려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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