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교 이야기

2010 대한민교 이야기
[미디어공공성포럼]김영호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0년 05월 20일 (목) 15:28:19 김영호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media@mediatoday.co.kr)


우리 학교에는 죄죽통이라고 하는 언론이네 패거리가 있는데, 얘들은 힘이 엄청 세다.

그래서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장이나 선생들도 얘들 눈치를 본다. 얘들은 부잣집 애들이나 권력 있는 집 애들하고만 친하게 지내고, 괜히 바른 말 한답시고 대드는 애가 있으면 뒷산으로 끌고 가서 몰래 패주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다 보는 운동장 한복판에서 때리고 짓밟고 만신창이를 만드는데 훈육주임 선생은 이런 광경을 보고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학교 일에 사사건건 시비 걸던 싸가지 없는 놈들 대신 혼내주어 속이 다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흐뭇해한다.

죄죽통이네가 원래부터 힘이 셌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 데리고 가 떡볶이나 핫도그 를 사주며 꼬시는 수준이더니 점점 부자애들 등에 업고 수업료 1년 치 대신 내주기, 자전거 사주기도 모자라 아예 현금까지 줘가며 자기네 편을 늘려가다 보니 이제는 얘네들이 하는 말이 곧 학생들 대부분의 의견인 것처럼 되어버려 운동회나 소풍가는 날짜 정하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급식 메뉴조차도 얘들이 주로 편드는 부자애들 입맛에 맞게 미제 소시지에 고기 위주로 짜여지고 있는 형편이다.

얘네 패거리 노는 꼴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제대로 소리 한번 해보자는 친구들이 몇 몇 생겨나기는 했으나 이 친구들하고 어울리다 괜히 왕따 당할까봐 몸 사리는 학생들에다 선생들조차 죄죽통이네 하자는 대로 짝짜꿍을 맞추니 바른 말은커녕 괜히 딴죽이나 거는 까칠한 애들 취급을 받고 있어 도저히 상대가 되지를 않는다.

그런데 힘으로 학생들을 휘어잡고 있는 죄죽통이네 하고는 달리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애들이 한 패 더 있는데, 예쁜 여자애, 잘생긴 남자애들 앞세워 노래하고 춤추며 나팔 불어대면서 학생들을 몰고 다녀 죄죽통이네 패거리가 장악하고 있던 영역을 넘보는 밴드부 애들이다. 밴드부 부장 임명권을 교장이 쥐고 있기 때문에 지들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힘을 불려온 죄죽통이네보다는 다루기가 훨씬 쉽다. 더구나 요즘 학생들은 말랑말랑한 것을 좋아 하니 목에 핏대 올리며 으름장을 놓는 죄죽통이네 패거리보다는 나긋나긋한 밴드부 애들이 더 인기가 있다.

그래서 불도저 회사의 기사에서부터 시작해 사장까지 오른, 교육의 교자도 모르는 현 교장이 취임하자마자 첫 번째로 한 일이 전 교장을 따르던 밴드부장 잘라버리고 자기 입맛에 맞는 새 부장 임명하는 일이었는데, 밴드부원들은 처음에는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투덜대듯 하더니 얼마 안지나 주인 무릎에 앉아 애교 떠는 푸들 강아지처럼 알아서 척척 기어주니 그저 기특할 따름이다.

우리 학교는 학교 본부 건물에 교장실, 교무실은 물론 교실, 도서관, 식당에 심지어는 오락실, 체육관, 밴드부 연습실까지 모두 들어있고, 본부 건물 외에는 허름한 자재 보관 창고나 옥외 화장실 정도만 별도 건물로 있기 때문에 전 교장은 본부 건물을 신축 이전하고 체육관이나 오락실 등을 학교 곳곳에 나누어 배치하는 계획을 세워 추진하였었는데, 새 교장이 오더니 건물 하나에 모든 시설이 몰려있으니 얼마나 편하냐? 교실에서 공부하다 지하 식당에 내려가서 밥 먹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고 오락실에 가서 노래 부르고 도서관에서 책 보고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괜히 이 건물 저 건물 옮겨 다니며 시간 낭비하다 보면 학력 경쟁에서 뒤지게 되고, 그 것이 결국은 학교를 망하게 하는 길이라고 고집을 피우며 전 교장의 신축 이전 계획을 백지화시키더니 그 돈 가지고 학교 주변의 개천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교장의 주장에 따르면 여름 장마철에는 장화 없이도 학교 다닐 수 있으니 좋고 보트도 띄워 데이트도 할 수 있게 해주면,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몰려와 가장 멋있는 학교로 알려질 테고 그러면 개천 주변의 잡상인들도 장사가 잘돼 학교에 발전 기금 팍팍 낼 테니 이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니겠냐고, 자기 출신답게 불도저를 동원해 밀어붙이고 있어 그 굉음 소리 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선생들이나 학생들, 심지어는 학부형들까지도 끽 소리 못하고 있는 것은 죄죽통이네가 교장 말씀에 거역하는 싸가지 없는 놈들은 모두 ‘째비’라고 몰아붙이는 바람에 감히 나서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째비’는 우리 학교에서만 통하는 낙인 같은 것인데, 왼손잡이를 비하하던 비속어를 자기 맘에 안드는 사람들에게 덮어씌우는 용어로 둔갑시킨 것이다)

밴드부는 부장까지 갈아치우며 앞장 서 나팔을 불어주기를 기대했더니 부장이란 녀석이 엉뚱한 말이나 지껄여 교장까지 난처하게 만들지를 않나, 부원 몇 명에게 질질 끌려 다니지를 않나 영 마음에 안 든다. 이럴 바에는 앞뒤 안 가리고 할 말 못할 말 다 해대는 죄죽통이네한테 밴드부까지 맡겨버려 아예 잡소리를 원천 봉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데려온 옛 친구인 밴드부 담당 선생에게 과업을 부과해 놓은 상태이다.

학생들은 수군거린다. 교장이야 임기 끝나면 가겠지만 죄죽통이네는 임기도 없이 밴드부까지 접수해 대를 이어가며 맘대로 떠들고 휘저어댈테니 이 꼴을 어쩌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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