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위해 평생을 준비한다.
작성자: 철마 | 조회: 1054회 | 작성: 2009년 4월 25일 11:23 오후 기회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항상 낚싯대를 던져 놓아라.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고기가 잡히리라.
- 오비디우스
1943년 11월 14일.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뉴욕 필하모닉의 세계적인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갑자기 아파서 지휘를 못하게 되는 비상 사태가 발생했다. 할 수 없이 부지휘자로 있던 사람이 대신 지휘를 맡게 되었는데, 전혀 뜻밖의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대타로 나와 단번에 스타가 된 이 부지휘자가 바로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중 하나로 꼽히는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성악가 신영옥 씨의 데뷔 스토리도 이와 비슷하다. 무명이던 시절, 그녀는 뉴욕 최고의 오페라 극단에서 아주 미미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자신이 주연으로 무대에 오를 날을 꿈꾸며 전 악장의 가사를 모두 외웠다. 어느 날 주연급 프리마돈나 홍혜경 씨가 몸이 너무 아파서 첫 악장을 연기하고는 도저히 더는 못하겠다고 했다. 곧 2막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당장 대신할 사람이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조연들 중에서 자기가 맡은 부분 외의 전 악장을 다 외우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신영옥 씨였다. 이 뜻밖의 기회로 그녀는 세계적 스타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의 동화 같은 데뷔 스토리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단순히 운이 좋았다는 것? 아니다. 그 운 좋은 기회의 파도를 잡아타는 것은 온전히 자신에게 달렸다. 내가 평소 남몰래 땀 흘려 실력을 쌓아 두면 전혀 예기치 못한 결정적인 순간에 기회를 붙잡고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 《워싱턴 포스트》지 기자 출신인 말콤 글래드웰이 쓴 《블링크(Blink)》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블링크'란 그야말로 눈 깜빡하는 순간을 말하며,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때 첫 2초 동안 우리의 무의식에서 섬광처럼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뜻한다. 우리가 보통 직관, 육감, 혹은 통찰이라고 부르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수없이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CEO들은 사람을 만났을 때 처음 몇 초의 직감으로 앞으로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면접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면접관들의 마음은 처음 몇 초에 다 결정되고, 나머지 시간은 그것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이런 '순간 직관력'을 원시적인 육감으로 치부하고, 잘 짜여진 논리와 체계적 지식으로 무장한 엘리트들을 양산한다. 그러나 논리와 지식만으로 무장한, 잘 학습된 합리적 사고는 평화롭고 안정된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변화무쌍한 현실의 세계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명문대 MBA 출신들이 정작 기업 현장에 투입되면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고수의 순간 직관력은 어떤 과학이나 정보의 통합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블링크'가 말하는 통찰력이다. 저자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힘”이라고도 했다. 새로운 문제에 매일 직면하여, 빠른 시간에 해법을 찾아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블링크' 능력은 조직의 사활을 좌우한다.
그런데 이 능력이 하루아침에 쉽게 생기는 것은 아니다. 평소 판단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꾸준하게 정보를 모으고, 그 쌓아 둔 정보와 경험을 빠른 속도로 활용하면서, 우리의 의식을 교육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게 다양한 자료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블링크' 능력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스타급 축구 선수들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본능을 훈련시켜 왔다. 그들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매순간 어디로 공을 보내고, 압박해 오는 수비를 어떻게 뚫을 것인지를 축적된 경험의 본능에 의해 판단하고 실천한다. 축구를 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경험 없이 무조건 순간 판단력에 기대선 안 된다. 남들 보기에 쉽게 결정하는 것 같은 일들도 그 순간을 위해서 오랫동안 노력의 시간을 기울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명설교로 유명한 한 목회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설교에 매료된 한 사람이 물었다.
“목사님, 그 설교를 위해 얼마나 준비하셨습니까?” 당시 나이가 50세였던 목사는 잔잔히 웃으며 대답했다. “50년을 준비했습니다.” 한 편의 설교 속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쌓은 기도와 연구와 삶의 경험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복서였던 조 프레이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복서는 이기기 위해 링에 오르는 게 아니다. 이길 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러 나가는 것이다. 수많은 연습으로 단련된 능력이 그 몇 분의 시합에서 터져 나와 확인되는 것뿐이다.”
시간은 투자이다. 평범해 보이는 오늘의 한순간 한순간을 허투루 넘기지 말자. 현재에 투자함으로써 미래의 승리와 안전을 확보해 두자. 당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평가받는 순간이 언제 눈앞에 닥칠지 모르니 늘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우리는 엄청난 시간의 적금을 타게 될지도 모른다.
필자 : 한홍님 온누리 교회 목사
출처 : 월간《행복한동행》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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