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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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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5일 6:00 오후
우리 모두가 ‘반올림’입니다
황상기 | 반올림 교섭단 대표(故황유미 아버지)
경향신문 입력 : 2014-01-23 21:00:07ㅣ수정 : 2014-01-23 22:58:01
저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황유미의 아버지입니다.
우리 유미는 2003년에 기흥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다가 2005년 6월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때 같은 병원에 또 다른 사람도 백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 역시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미와 함께 2인1조로 일을 하던 이숙영씨도 2006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한 달 만에 사망했습니다.
저는 참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유미한테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어보니 반도체를 여러 화학약품들에 담갔다 뺐다 하는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의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사 사람한테 유미 병은 산재 같으니 산재 처리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사람은 유미의 병은 회사와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질병이라고만 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유미는 사망했고 우리 집은 유미 치료비로 인해 파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유미 할머니는 유미를 그리워하다 화병으로 돌아가셨고 유미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수차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저는 유미가 백혈병에 걸린 이유를 찾고자 여기저기 방문했지만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습니다. 나를 좀 도와 달라고 정당, 언론사, 사회단체, 노동단체를 찾아 다녔지만 모두들 삼성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딱 한 곳, 수원에 있는 다산인권센터에서 제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 경기본부가 함께 유미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2007년 11월20일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반올림 발족 기자회견도 가졌습니다.
이후 반올림은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업병이 의심되는 피해자를 찾아나섰고 제보도 받았습니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하는 것도,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우리는 반올림이란 이름으로 대응했습니다.
작년 초부터는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공식 대화의 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삼성 직업병 문제가 사회에 알려진 지 6년이나 지나 삼성 측은 마지못해 대화에 임하는 것 같았지만 이제라도 삼성에게 공개 사과를 받고, 보다 많은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은 우리 유미를 위해서도, 전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 가족들과 반올림 활동가들 즉 ‘반올림’이란 이름으로 뭉친 우리들은 삼성과의 협상문제가 제대로 되게 하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에 임했고 10개월 만인 2013년 12월18일 첫 본협상 자리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삼성 측은 첫 본협상의 대화 시작에서부터 ‘반올림 활동가들은 무슨 자격으로 여기 왔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반올림은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없으니 협상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반올림을 대화상대로 인정한다면서도 피해자의 위임장을 받아와야 한다는 이해 못할 말도 했습니다. 삼성에서 대화하러 나온 사람들은 자기 위상만 챙기려고 했지 책임감은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한 차례의 교섭이 그렇게 파행으로 끝난 뒤로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교섭은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삼성의 태도가 반올림과 피해자를 분리시켜 합의금 몇 푼 집어주고 노동자의 노동3권, 각종 화학약품에 대한 관리부실, 전리방사선 노출 문제, 환경문제 등은 피해가려고 그러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는 안됩니다. 삼성은 이제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책임 있는 자가 나와서 직업병 피해에 대한 공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위해 반올림과의 교섭에 성실히 임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