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희망’ 없는 희망퇴직 이야기…MBC ‘다큐스페셜’
작성자: 최종관리자 | 조회: 1704회 | 작성: 2014년 9월 17일 3:17 오후4월 14일 폐막한 '인디다큐페스티벌 2014'에서 '관객상'을 받은 이진우 감독의 <전봇대 당신>. <전봇대 당신>은 KT를 다녔던 이진우 감독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감독의 아버지 이만구 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 KT 사내 교육 연수원에서 직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로 일했으나 KT의 민영화 이후 승진에서 탈락하고 비연고지 업무와 '전봇대 업무'를 전전하다 겨우 2010년 12월 퇴직했다.
<전봇대 당신> 속 아버지는 전봇대 업무를 전전하면서도 결국 회사 생활을 '퇴직'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2003년 5000명, 2014년 8300명 등 민영화 이후 KT에서는 이진우 감독의 아버지처럼 나이를 꽉 채워 퇴직하지 못한 희망퇴직자가 대규모로 양산되고 있다. 15일 방영된 MBC <다큐 스페셜> '전봇대 가장-희망퇴직 이야기'는 이들을 비롯한 '희망퇴직'의 현실을 다뤘다.
교수가 전봇대 오르고, 증권맨이 전단지 돌리고...'희망퇴직'의 현주소
'전봇대 업무'란 전국의 통신망을 관리하는 KT의 전봇대를 관리하는 업무이다. 한 KT 영업소 뒷마당에 전선줄이 연결되지 않은 전봇대가 놓여있다. 전봇대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연습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전봇대는 때로는 희망퇴직자들을 '고문'하는 장소가 된다.
KT를 다녔던 중년의 여성은 전봇대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잃는다. 남편이 위암 수술을 받아, 희망퇴직만은 피하고 싶었던 그에게 전봇대 업무가 주어졌다. 희망퇴직만은 막기 위해 새로 발령받은 영업소에선 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처음 전봇대 위에 올라가야만 했다. 직장에서 버텨야 한다는 마음으로 겨우겨우 올라간 전봇대. 하지만, 눈앞이 까마득했다. 결국 그는 KT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전봇대 업무가 아니라고 해서 나을 것도 없다. IMF 시절,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KT의 부흥을 이끌었던 공규식 씨가 지금 하는 일은 또 다른 전봇대 업무다. 핸드폰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잘못 설치된 전봇대를 찍는 일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다. 공로를 인정받기는커녕 그에게 돌아온 것은 '토사구팽', 말이 좋아 '희망퇴직'이다.
이는 KT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전에서 일하던 한 대신증권 직원은 하루아침에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근하게 됐다. '그저 버티라'는 아내의 말을 외면할 수 없어, 희망퇴직 대상자임에도 회사를 제 발로 나가지 않은 그에게 지금 주어진 일은 대신증권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다.
대신증권의 '희망퇴직' 프로그램에는 별 희한한 업무가 다 있다. 직접 발로 뛰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식당 주방에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일한 흔적을 사진을 찍어 보내야 하는 것은 물론, 각 식당 별로 돌아다니며 명함을 모아다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쓸쓸히 명함을 모으며, 희망퇴직 대상자가 된 직원은 말한다. 이게 '희망'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저 '희망퇴직'을 하라는 전조등일 뿐이라고.
이처럼 경영 효율성을 위해 직원들을 정리 해고하고 있는 증권사 직원들의 경우 성과를 내 희망퇴직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그리고 주변의 자금을 끌어들인다. 그 과정에서 빚은 눈 더미처럼 불어난다. 그리고 회사에서 버티다 못해 퇴직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일 뿐일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희망퇴직이 선포된 현대증권 회사 앞, '먼저 가겠다'는 희망퇴직자의 편지를 듣는 직원들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말이 좋아 희망퇴직이지, 하루아침에 메신저나 쪽지로 전달되는 희망퇴직 통지는 대다수 직장인들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다.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으며 충성을 다했던 직장에서 쫓겨난 직장인들은 대부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때로는 그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한 채 세상과 담을 쌓기도 한다.
희망퇴직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쌍용자동차 퇴직자는 결국 가족을 잃었다. 아내와 이혼한 후, 아내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을 이제 그는 한 달에 한번 밖에 볼 수 없다. 그래도 아직은 가장이자 아버지로서의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그는, 자기 키만 한 짐 더미를 오르내리는 평택항의 일용직 근로자로 살아간다.
영화 <전봇대 당신>을 연출한 이진우 감독은 '순이익 50%를 무조건 주주들을 위해 배정하겠다'는 이석채 전 KT 회장의 주주총회 광경을 영화에 담는다. 그리고 이 감독은 말한다. 민영화 이후 직원들의 근무 환경은 더 피폐해졌고, KT는 직원들 보다 '주주'를 위한 회사가 되었다고.
KT만이 아니다. 불황을 견디는 대다수 기업들의 해결 방식은 평생을 직장을 위해 살아온 직원들을 '홀로코스트'처럼 대규모적으로 감원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루아침에 직장을 벗어난 중년의 가장들은 정신적 내홍과, 경제적 고통을 감내하기에 버겁다. 그렇다고 희망퇴직을 하지 않고 버티자니, 남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모멸감'뿐이다.
앞서 같은 문제를 다뤘던 < PD수첩 >에 이어 방송된 <다큐 스페셜> '전봇대 가장-희망퇴직 이야기'편은 보다 구체적이고,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OECD 회원국 중 근로자 평균 근로 연수가 가장 짧다는 한국의 구체적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전봇대 가장'은 그 어떤 비극보다 리얼하다.
<전봇대 당신> 속 아버지는 전봇대 업무를 전전하면서도 결국 회사 생활을 '퇴직'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2003년 5000명, 2014년 8300명 등 민영화 이후 KT에서는 이진우 감독의 아버지처럼 나이를 꽉 채워 퇴직하지 못한 희망퇴직자가 대규모로 양산되고 있다. 15일 방영된 MBC <다큐 스페셜> '전봇대 가장-희망퇴직 이야기'는 이들을 비롯한 '희망퇴직'의 현실을 다뤘다.
교수가 전봇대 오르고, 증권맨이 전단지 돌리고...'희망퇴직'의 현주소
▲ MBC <다큐스페셜> '전봇대 가장-희망퇴직 이야기' 편 스틸컷 | |
ⓒ MBC |
'전봇대 업무'란 전국의 통신망을 관리하는 KT의 전봇대를 관리하는 업무이다. 한 KT 영업소 뒷마당에 전선줄이 연결되지 않은 전봇대가 놓여있다. 전봇대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연습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전봇대는 때로는 희망퇴직자들을 '고문'하는 장소가 된다.
KT를 다녔던 중년의 여성은 전봇대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잃는다. 남편이 위암 수술을 받아, 희망퇴직만은 피하고 싶었던 그에게 전봇대 업무가 주어졌다. 희망퇴직만은 막기 위해 새로 발령받은 영업소에선 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처음 전봇대 위에 올라가야만 했다. 직장에서 버텨야 한다는 마음으로 겨우겨우 올라간 전봇대. 하지만, 눈앞이 까마득했다. 결국 그는 KT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전봇대 업무가 아니라고 해서 나을 것도 없다. IMF 시절,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KT의 부흥을 이끌었던 공규식 씨가 지금 하는 일은 또 다른 전봇대 업무다. 핸드폰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잘못 설치된 전봇대를 찍는 일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다. 공로를 인정받기는커녕 그에게 돌아온 것은 '토사구팽', 말이 좋아 '희망퇴직'이다.
이는 KT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전에서 일하던 한 대신증권 직원은 하루아침에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근하게 됐다. '그저 버티라'는 아내의 말을 외면할 수 없어, 희망퇴직 대상자임에도 회사를 제 발로 나가지 않은 그에게 지금 주어진 일은 대신증권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다.
대신증권의 '희망퇴직' 프로그램에는 별 희한한 업무가 다 있다. 직접 발로 뛰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식당 주방에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일한 흔적을 사진을 찍어 보내야 하는 것은 물론, 각 식당 별로 돌아다니며 명함을 모아다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쓸쓸히 명함을 모으며, 희망퇴직 대상자가 된 직원은 말한다. 이게 '희망'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저 '희망퇴직'을 하라는 전조등일 뿐이라고.
▲ MBC <다큐스페셜> '전봇대 가장-희망퇴직 이야기' 편 스틸컷 | |
ⓒ MBC |
이처럼 경영 효율성을 위해 직원들을 정리 해고하고 있는 증권사 직원들의 경우 성과를 내 희망퇴직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그리고 주변의 자금을 끌어들인다. 그 과정에서 빚은 눈 더미처럼 불어난다. 그리고 회사에서 버티다 못해 퇴직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일 뿐일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희망퇴직이 선포된 현대증권 회사 앞, '먼저 가겠다'는 희망퇴직자의 편지를 듣는 직원들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말이 좋아 희망퇴직이지, 하루아침에 메신저나 쪽지로 전달되는 희망퇴직 통지는 대다수 직장인들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다.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으며 충성을 다했던 직장에서 쫓겨난 직장인들은 대부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때로는 그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한 채 세상과 담을 쌓기도 한다.
희망퇴직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쌍용자동차 퇴직자는 결국 가족을 잃었다. 아내와 이혼한 후, 아내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을 이제 그는 한 달에 한번 밖에 볼 수 없다. 그래도 아직은 가장이자 아버지로서의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그는, 자기 키만 한 짐 더미를 오르내리는 평택항의 일용직 근로자로 살아간다.
영화 <전봇대 당신>을 연출한 이진우 감독은 '순이익 50%를 무조건 주주들을 위해 배정하겠다'는 이석채 전 KT 회장의 주주총회 광경을 영화에 담는다. 그리고 이 감독은 말한다. 민영화 이후 직원들의 근무 환경은 더 피폐해졌고, KT는 직원들 보다 '주주'를 위한 회사가 되었다고.
KT만이 아니다. 불황을 견디는 대다수 기업들의 해결 방식은 평생을 직장을 위해 살아온 직원들을 '홀로코스트'처럼 대규모적으로 감원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루아침에 직장을 벗어난 중년의 가장들은 정신적 내홍과, 경제적 고통을 감내하기에 버겁다. 그렇다고 희망퇴직을 하지 않고 버티자니, 남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모멸감'뿐이다.
앞서 같은 문제를 다뤘던 < PD수첩 >에 이어 방송된 <다큐 스페셜> '전봇대 가장-희망퇴직 이야기'편은 보다 구체적이고,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OECD 회원국 중 근로자 평균 근로 연수가 가장 짧다는 한국의 구체적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전봇대 가장'은 그 어떤 비극보다 리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