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경영진 필독)’사람 잡는 효율성’이 불러온 재앙
작성자: 최종관리자 | 조회: 6838회 | 작성: 2010년 6월 6일 1:31 오전얼마 전 한겨레에 도요타 리콜사태의 본질이 '사람 잡는 효율'에 있다는 가시가 실렸습니다.
내용을 보면 도요타 경영진의 행동이 KT 현재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내부고발과 외부비판 차단, 철저한 사내 사상통제와 세뇌,노조의 어용화
12조원이 넘는 사내유보 상황에도 사저이 어려워지면 주저 없이 감행하는 구조조정 등입니다.
업무외 무수한 무급활동에 영원히 잠든 39세의 품질관리반장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내용을 보면 도요타 경영진의 행동이 KT 현재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내부고발과 외부비판 차단, 철저한 사내 사상통제와 세뇌,노조의 어용화
12조원이 넘는 사내유보 상황에도 사저이 어려워지면 주저 없이 감행하는 구조조정 등입니다.
업무외 무수한 무급활동에 영원히 잠든 39세의 품질관리반장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부디 이석채 사장을 비롯한 KT의 경영진들이 이 글을 읽고 지금이라도 위기의 본질을 깨닫기 바랍니다.
원문은 한겨레 2.27일(토)자 11면에 나와 있습니다.
마이뉴스재팬 지음·제이피뉴스 옮김/창해·1만5800원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1999년에 낸 이런 이름의 책에서 도요타자동차의 고급 승용차 렉서스 아이치현 생산현장 견학 체험을 떠올리면서 렉서스를 냉전 이후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상징이요 총아로 예찬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그 책에서 프리드먼은 뿌리(정체성)와 전통을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와 렉서스의 적절한 균형을 얘기했지만 신자유주의 전도사답게 시장과 성장과 컴퓨터 기술과 금융이 가져다 줄 낙관적 미래를 그리며 렉서스와 도요타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그 뒤 10년도 못 가 신자유주의 신화가 무너지고 대량 리콜 사태를 계기로 렉서스도 위기에 직면했다. 23일 미 국 하원 ‘도요타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나온 도요다 아키오 사장의 풀죽은 모습을 보고 프리드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프리드먼이 렉서스를 예찬한 지 8년 뒤(2007년)에 나온 <토요타의 어둠>이란 책에서 공저자 하야시 마사아키는 도요타의 앞날에 대해 이렇게 예언한다. “근본적으로 무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언젠가 파탄을 맞고 말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일어날지 모르지만, 나는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다.” 불과 2년여 만에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또 한 사람의 공저자 와타나베 마사히로에 따르면, 도요타의 위기는 프리드먼이 렉서스를 찬양하던 그 시기에 이미 시작됐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끝내 공개하기를 거부한 업체별 자동차 리콜 건수를 추적한 와타나베에 따르면 그때 이미 도요타는 ‘리콜왕’이었다. 2001~5년간 무려 525만대의 리콜. 나중에 결함 은폐와 리콜 지연 폭로로 회사 자체가 궤멸적 타격을 입게 되는 미쓰비시의 같은 기간 리콜 건수 300여만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리콜이 많았다는 것은 오히려 그만큼 믿음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도요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와타나베가 대표이사로 있는 인터넷 뉴스전문 사이트 <마이 뉴스 재팬>이 국토교통성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도요타는 일본 국내에서 2004~6년 3년간 512만대를 팔고 511만대를 리콜해 결함률 99.9%를 기록했다. 출시한 지 오래된 차들을 리콜하는 수도 있으니 단일 연도 리콜비율이 100%가 넘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3년간 연속 평균이 거의 100%라는 건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도요타 자동차의 성능은 정말 뛰어난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와타나베가 내린 결론은 ‘아니올시다’다. 2007년에 생산 대수로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가 된 도요타의 1000만대가 넘는다는 이번 리콜 사태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오래전 시작된 그 추세가 이 책이 출간된 2007년 이후 지금까지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왜 아무도 몰랐을까. 아니 왜 알면서도 문제를 지적하기는커녕 도요타의 성공을 찬양하고 모두가 ‘도요타 배우기’에 열중했던 것일까. 언론은 도요타에 왜 그토록 관대했을까. 그 비밀은 이미 상당 부분 드러났듯이, 철저한 문제 감추기다. 은폐와 거짓말은 도요타 안팎에서 전방위적·조직적으로 진행됐다.
엄청난 광고비로 언론 재갈 물리기, 완벽한 어용노조 시스템, 그리고 자신들의 태만을 숨기려는 ‘기업 프렌들리’ 본색의 정부 관료들, 이 정계·재계·언론 삼위일체의 철옹성 유착.
지은이들은 철저한 실력주의, 효율지상주의 등 도요타가 지닌 장점도 인정한다. 문제는 그 이면의 짙은 그늘(어둠)이다. 내부고발 및 외부비판 차단, 철저한 사내 사상통제와 세뇌, 그 결과 피할 수 없는 잘못된 시스템 온존과 개혁 거부. 12조엔이 넘는 사내유보를 쌓아놓고도 사정이 어려워지면 주저 없이 감행하는 대량해고, 저임금의 비정규직 양산(한때 40%에 가까웠다)을 수반하는 도요타식 경영은 그럴수록 배당몫이 커지는 일본 안팎의 주주들에겐 절대적 환영을 받았지만 노동자와 소비자에겐 재앙이었다. 이 양면성이 바로 도요타 문제의 본질이다.
와타나베는 요코타 하지메의 <도요타의 정체>를 평가하면서도 “평론가의 대담 형식을 취한 내용이 많고 현장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도요타의 어둠>이 장기로 내세우는 게 바로 도요타 생산현장 노동자들이 폭로하는 도요타의 숨겨진 얘기들, 곧 현장성이다.
업무 외 무수한 무급 활동들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고 변칙근무로 가혹한 잔업 수당마저 깎아버리는 도요타 실상은 근무 중 30살로 과로사한 우치노 겐이치 품질관리반장의 구체적 일상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오후 4시1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근무하고도 잔업에다 근무 외 잡무에 시달리다 아침 6시 반이나 돼야 귀가하던 그는 2002년 2월9일 새벽 4시20분께 상사와 함께 책상에서 ‘전달사항’을 작성하던 중 쓰러져 그토록 원하던 잠에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회사는 과로사를 인정하지 않았고 동료들은 그의 아내가 과로사를 인정받기 위해 요청한 서명조차 거부했으며, 노동감독관청은 도요타 편을 들었고, 노동조합마저 그들 편이었다.
도무지 노조라고 할 수 없는 노조의 실상에 대해서는 과로로 목매 자살한 40대 조합원을 외면한 노조를 바꾸려고 직장위원에 출마했다가 눈 밖에 나 나이 50살에야 겨우 반장 자리에 오른 소수 노조 전(全)도요타노동조합 위원장 와카쓰키 다다오가 증언한다. 비정규직 노동착취 실태는 도요타 협력업체 덴소 파견사원 기타자와 도시유키, 위장청부를 고발한 야베 히로시, 그리고 노조 파괴를 위해 스트립쇼까지 동원하는 필리핀 현지공장, 불법 잔업노동을 시키면서 작업시간 화장실 이용자에게 1분당 15엔의 벌금을 물리고 휴대전화도 못 쓰게 하면서 회사전화 1회 이용에 1만엔을 징수하는 베트남 연수생들 노동착취 사례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2000년 이후 3년마다 총경비 30% 절감을 위해 안전과 품질, 사람마저 희생시킨 도요타. 세계 1등 자동차업체로 등극시킨 그 무리한 전략이 이제 도요타라는 거함을 침몰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하야시는 도요타의 위기에서 오로지 승자 위주로 치달린 군국주의 일본의 불길한 망령을 읽어낸다. 과도한 미국의 ‘도요타 때리기’ 의도는 분명 의심스럽지만 도요타도 결코 믿을 바 못 된다고 <도요타의 어둠>은 얘기한다.
도요타의 또다른 ‘어둠’
연 광고비 수조원 …비판 입막음 ‘일등 기업’
2004년 8월 규슈 구마모토에서 도요타 ‘하이럭스’를 운전하던 공무원이 앞바퀴 방향을 잡는 장치인 릴레이 로드가 부러지는 바람에 핸들 조작을 할 수 없어 맞은편 차로의 자동차와 충돌해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도요타는 그 2개월 뒤 동종 자동차 약 33만대에 대한 리콜을 실시했다. 그런데 도요타는 그 8년 전인 1996년 사내 조사에서 릴레이 로드가 강도 부족으로 부러질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으면서도 인명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그 사실을 감추고 있었다. 도요타는 당시 리콜을 하면서도 82건에 이르는 부품파손 사건들을 11건으로 축소해 국토교통성에 보고했다.
이 모든 사태에도 침묵을 지키던 일간지들이 처음으로 리콜 사실 등을 보도한 것은 2006년 7월이었다. <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 등 유력 일간지들은 2005년 8월에 경찰이 도요타에 대한 가택수사에 들어갔을 때도 단 한 줄도 다루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본부를 차리고 가택수색에 들어갈 정도의 민감한 사건이라면 경찰청 기자실을 출입하는 유력지 기자들이 몰랐을 리 없고 알았다면 당연히 크게 보도했어야 한다. 경찰이 미쓰비시자동차를 상대로 비슷한 조처를 했을 때는 이 신문과 방송들이 즉시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도요타 북미공장의 오다카 히데아키 사장의 경질로 귀결된 그의 여비서 성희롱 사건도 일본 유력 조간지들은 통신사 전문을 인용하는 등의 형식으로 짤막하게 다루었을 뿐이다. 2006년 12월 도요타의 60억엔 탈세와 5억엔 소득은폐 및 20억엔 추징과세 사건도 주요 신문들은 탈세가 아닌 ‘신고 누락’이란 타이틀로 크지 않게 보도했다. 다이와하우스라는 작은 회사의 1억엔 소득은폐와 3억엔 탈세에도 대문짝만한 헤드라인을 달았던 신문들이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도 예외가 아니다. <마이 뉴스 재팬>이 2007년 9월부터 기사를 제공하기 시작한 포털사이트 야후는 <도요타의 어둠>을 쓰고 있던 그 뉴스사이트 필자들에게 “송구스럽지만 도요타자동차도 당분간은 배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양해 메일을 보냈다. 신문들 중 오직 하나의 예외는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적기)뿐이었다.
1000만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이번 미국발 도요타 대량 리콜 사태에도 온 세상이 들썩거릴 때까지 정작 일본 언론들은 대체로 잠잠했다.
이런 사태 뒤에는 도요타가 뿌리는 엄청난 규모의 광고비가 자리잡고 있다고 <도요타의 어둠>은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2007년 3월 결산의 도요타 단일기업 광고선전비는 1054억엔으로 2위 마쓰시타(831억엔), 3위 혼다기겐(815억엔)을 훨씬 능가했다. 텔레비전이나 잡지에 막대한 광고비를 쏟아붓는 엔티티도코모는 230억엔 정도. 도요타는 그때까지 10년 이상 수위를 지켰다. 히노, 다이하쓰, 부품업체 덴소와 국외 자회사 등을 합한 도요타의 연결결산 광고선전비 총액은 무려 4511억엔.
일본 국민들은 엄청난 돈 공세가 받쳐주는 이런 ‘도요타 네거티브 정보 삭제 캠페인’을 알 도리가 없다. <도요타의 어둠> 지은이들은 따라서 미디어 교육을 의무교육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의 나라 얘기 같지 않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