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KT임금피크제 소송 – 자본과 권력의 압박에 굴복한 사법부의 부끄러운 판결을 규탄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제48민사부 재판장 이기선 부장판사)은 6월 16일 KT노동자들이 제기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지난 5월 26일 대법원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연령차별로 무효’ 라고 판결한 이후 첫 하급심 판결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판결 선고였다.

당시 전경련, 경총,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대법원 판결 직후 우려를 표명하였고 임금피크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명분으로 설명회와 세미나 등을 잇달아 개최하며 사실상 임금피크제 무효에 대한 총자본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또한 고용노동부도 자본의 입장에서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에 대한 설명자료를 배포하였고 장관까지 나서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들을 안심시키기까지 하였다. 상당수 언론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마치 임금피크제 소송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처럼 확대 재생산하였다.

이렇듯 KT임금피크제 판결을 앞두고 자본과 권력 뿐 아니라 그들의 나팔수인 언론은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하도록 대놓고 압박하며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우리가 이번 법원의 판결을 자본과 권력의 압박에 굴복한 부끄러운 판결로 규정하는 이유이다.

한편 이번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할 경우, 임금피크제가 시행중인 전체 사업장의 연쇄소송으로 이어져 사법행정이 마비될 수 있다는 부담감도 자본과 권력의 압박과 맞물려 기각 판결의 한 요소로 작용하였다고 본다

이렇게 미리 기각 판결을 결정해 놓고 판결문을 작성하다 보니 논리 구성에 허점이 너무 많고, 사실관계 판단의 오류과 법리의 잘못된 적용이 만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1심 판결문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몇 가지 부분으로 정리하면,

첫째, 1심 판결은 2014. 4. 8.자 노사합의가 체결된 후, 2014. 11. 19. 실시된 KT노동조합 위원장 선거에서 정윤모가 다시 위원장에 당선되었고, 그 득표율에 비추어 조합원들이 2014. 4. 8.자 노사합의를 사실상 추인하였다고 볼 여지 도 크다고 한다. 그러나 정윤모가 위원장으로 재선된 것과 2014. 4. 8.자 노사합의 추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한 정윤모가 위원장으로 재선된 것은 2014. 11. 19.로서 2015. 2. 24. 이 사건 노사합의 이전의 일이다. 제1심 판결은 임금피크제 노사합의 이전의 선거 결과를 마치 이 사건 노사합의에 따른 임금피크제를 추인한 것처럼 전도하여 사실을 오인하였다는 점에서 근본적 문제가 있다.

둘째, 1심 판결은 2014. 4. 8.자 노사합의에 의하여 임금피크제 도입이 확정된 사항이었고 다만 세부기준에 관한 합의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적용연령, 감액률, 시행시기는 모두 2014. 4. 8.자 노사합의가 아니라, 2015. 2. 24.자 두 번째 밀실노사합의로 결정되었다. 제1심 판결은 2015. 2. 24. 이 사건 노사합의로 임금피크제의 모든 내용이 정해졌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셋째, 1심 판결은 피고와 KT노동조합이 2014. 12. 23.부터 2015. 2. 24. 까지 6차례 노사상생협의회를 개최하여 임금피크제를 협의해 왔고, 마지막 노사 상생협의회 개최일인 2015. 2. 24. 노사합의에 이르렀다고 한다. 문제는 그런 2개월에 걸친 협의기간 동안 조합원을 비롯한 구성원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 밀실에서 노사합의를 하였다는 것이다. KT노동자들은 이 사건 밀실노사합의가 체결된 후 2015년 2월 25일 KBN 사내방송을 보고서야 ‘어제’ 노사합의가 체결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부분 제1심 판결은 그 자체로 이 사건 노사합의가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하여 위법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넷째, 1심 판결은 임금피크제에 관하여 조합원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기재 하였다가 삭제한 KT노동조합 홈페이지에 게시된 답변글은 피고나 KT노동조합을 구속하는 법적인 효력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금지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의 효력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위반의 중대성, 당사자에게 법 규정을 위반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2020.11.12.선고  대법원2017다228236 판결 참조).  KT노동조합이 2014. 4. 8.자 1차 밀실합의에 이어 조합원들을 연거푸 배신하고 기망한 것은 그 위반의 중대성, KT노동조합이 노동조합법 제16조 제1항 제3호를 위반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임에도 재판부는 이를 간과한 잘못이 있다.

다섯째, KT는 고령자고용법 개정에 따라 정년을 연장한 것이 아니라, ‘정관’에 따라 정년이 연장되었다. KT 정관 제50조 제2항은 “회사 직원의 정년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되면 별도로 노사합의나 취업규칙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정관’에 의하여 정년이 연장 또는 단축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KT의 정관 규정을 간과하여 마치 이 사건 노사합의로 정년이 연장된 것처럼 사실을 오인하였다.

여섯째, KT는 이 사건 임금피크제에 앞서 이미 2014. 4. 8. 1차 밀실합의로 전체 직원의 1/3, 8,356명을 명예퇴직 시켰다.  판결문에도 지적한 것처럼 정년연장에 따른 사업주의 재정적 부담 증가로 기존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등의 반작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임금체계 개편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는데, 정작 KT는 이 사건 임금피크제에 앞서 구조조정, 그것도 대한민국 역사상 단일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전체 직원의 1/3, 8,356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구조조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와 같은 사전 구조조정에 따른 인건비 감소 등을 간과하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일곱째, KT는 이 사건 임금피크제에 앞서 이미 2009년 6월 1일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였다. 연차에 따라 호봉, 기본급이 높아지는 구조가 아니라, 실적에 따라 임금을 받도록 이미 임금체계를 개편해 놓았음에도, 재판부는 이를 간과하였다.

여덟째, 1심 판결은 피고 회사의 인력구조 및 경영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KT는 고령자고용법 개정에 따른 정년연장에 대응하여 임금피크제 등을 실시함으로써 인건비를 절감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 임금피크제에 앞서 이미 2014. 4. 8. 1차 밀실 노사합의로 전체 직원의 1/3, 8,356명이 퇴직하여 해마다 연간 5,8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2014년 재무제표에 영업손실이 7,194억 원, 당기순손실이 11,419억 원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이는 2014년 8,356명의 특별명예퇴직의 시행으로 일시적으로 지출한 비용 12,154억원이 포함된 금액이다. 이러한 일회성 비용을 제외하면 2014년은 오히려 영업이익 4,960억원, 당기순이익 735억원의 흑자경영 상황이었다.

실제로 대표이사 황창규는 2014년 영업이익 3,332억원(특별명예퇴직에 의한 일시적 인건비 제외)을 냈다는 이유로 4억 2,900만원의 급여 외에 별도로 7,500만 원의 상여금까지 받았다. 이 사건 임금피크제 노사합의를 할 당시인 2015년 1분기 KT사업보고서를 보더라도, 당시 영업이익은 2,130억 원, 당기순이익은 2,880억 원에 이르렀다. 2014년 8,356명의 명예퇴직에 따른 효과로 2015년 1분기에만 1,470억원 정도의 이익이 늘어난 것이다.

무엇보다 KT는 2014년부터 2021년까지 퇴직 임원 총 48명에 대하여 퇴직 후 별도로 3년간 신규로 상근자문역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419억원의 추가 임금을 지급하였다. 퇴직 임원들이 예정대로 퇴직하고 신규 근로계약만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이 사건 임금피크제와 같은 과도한 내용은 도입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홉째, 노동자들은 정년이 연장된 2년간 공짜로 임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종전과 동일한 근로를 제공하였다. 업무변경이나 경감, 근로시간 단축 등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2014년 4월 8일 1차 밀실합의로 전체 직원 1/3이 일시에 퇴직하여 3명의 업무를 2명이 하여 업무가 과중된 상황이었다. 임금삭감 기간, 임금 삭감 폭도 결코 KT와 KT노동조합이 조합원,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비율이 아니다. 10%~40%까지 무려 절반에 가까운 임금을 삭감하는 ‘절대수치’만으로도 상당한 임금삭감이다. 만 56세부터 만 59세까지 4년간 100% 임금을 삭감 한다는 의미는 4년 중에 1년치 임금을 삭감, 1년간 공짜노동을 하라는 것으로서 사전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노사가 담합할 수 있는 수준이 절대 아니다.

같은 통신3사와 비교해보더라도 KT임금피크제는 극히 과도한 수준 이었다. 통신3사 중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고령자고용법에 따른 정년 연장이 시행되는 2016년보다 2년 앞서 2014년부터 기존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정년을 2년 연장하고, 정년이 연장되는 만 58세부터 만 59세까지 2년간 임금을 10%씩 감액하는데 그쳤다. 반면 KT는 2014년 선제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여 남은 직원들의 업무가 과중된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정년연장은 2016년부터 시행하는 반면 임금삭감은 2015년부터 4년간 10~40%까지 합계 100%를 삭감하였다. 이처럼 같은 통신3사와 정년연장 시기(2014년 vs. 2016년), 임금삭감 기간(2년 vs. 4년), 임금삭감 폭(20% vs. 100%), 구조조정 유무(없음 vs. 미리 전체 직원 1/3 대규모 구조조정) 모든 측면에 비추어 보더라도 KT 임금피크제는 과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열번째, KT 정관에 따라 정년연장은 이 사건 임금피크제 적용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의 정년이 연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만 56세부터 만 59세까지의 근로자들에 대해서만 임금을 삭감하려면 그 연령대 근로자들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 56세부터 만 59세까지 근로자들 역시 종전과 동일한 업무를 하였고, 만 55세 이하 근로자들과 동일하게 평가를 받았다. 만 56세 이상 근로자들만 특별히 임금을 삭감해야만 하는 합리적 이유를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열한번째, 정년이 연장된 만 58세, 만 59세 근로자들에 대하여 합당한 범위 내 에서 임금을 삭감한다면 그나마 1심 판결이 타당할 수 있다. 만 58세부터 만 59세까지 정년이 연장된 2년간 각 10%의 임금을 삭감한 SK텔레콤, LG유플러스의 사례가 그러하다. 그러나 KT 임금피크제는 실제로 정년연장 효과가 없는 만 56세, 만 57세 노동자들에 대하여도 각 10%, 20%의 임금을 삭감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만 56세, 만 57세 근로자들도 장래에 정년연장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임금피크제가 적용되지 않는 만 54세, 만 55세 근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유독 만 56세 이상만 임금을 특별하게 선별해 임금을 삭감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차별에 해당된다.

열두번째, 고용노동부의 업종별 임금피크제 일반모델안을 보면 연공급 중심의 우리 임금체계 때문에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고 한다. 성과와 관계없이 임금이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 인상되는 연공서열식 호봉제가 지배적인 우리나라 기업들의 현실에서 정년 연장시 기업 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KT는 앞서 본 것처럼 이미 2009년 6월 1일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였다. 만 56세에서 만 58세까지 직원들도 연차에 따라 호봉이 높아지는 구조가 아니라, 실적에 따라 임금을 받도록 이미 임금체계가 개편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종전과 동일한 업무를 시키고, 종전과 동일하게 실적에 따라 임금을 지급함에도 유독 만 56세 이상의 근로자들만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차별에 해당한다.

열세번째, 실제로 감액된 인건비는 장년층의 복리증진, 청년층의 신규채용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퇴직한 임원들에 대하여 새로 3년간 상근자문역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추가임금을 지급하는데 사용되었다. 불과 48명의 퇴직 임원들에 대하여 무려 419억원을 지출하였다.

결론적으로 1심 판결은 이 사건 임금피크제 도입경위 및 과정, 절차상 하자, 연령차별의 합리적인 이유 존부 등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사실을 오인한 점, 노동조합법 제16조 제1항 제3호의 규범적 의미와 체계적 해석 원칙을 애써 외면한 점에서 문제가 있고, 사법부가 총자본의 공세에 굴복했다는 점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번 임피 소송을 추진해온 KT민주동지회와 KT노동인권센터는 1심판결에 나타난 위와 같은 문제점들이 철저하게 반영되어 항소심 재판부가 제대로 판결할 수 있도록 원고로 참여한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해 나갈 것이다.

2022년  6월  18일

KT전국민주동지회 / KT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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