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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율은 독일 4분의 1, 사망률은 4배 …‘산재 미스테리’

등록 :2016-06-26 21:22수정 :2016-06-27 09:18

 

산재율은 OECD 평균보다 낮지만 죽는 노동자는 압도적 1위
산재를 산재라 부르지 못하는 탓
실제 재해율, 발표치의 23배 추정

산재 많으면 보험료 올라가고
원청에선 재계약 끊어버려
광범위한 산재 은폐 부추겨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김아무개(35)씨는 2014년 7월 전기 차단기가 내려져 있는 줄 알고 변전기 분리작업을 하던 중 감전사고를 당했다. 회사 쪽은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회사 차로 김씨를 병원에 데려갔다. 회사는 산업재해(산재) 처리를 하지 말고 공상 처리(건강보험으로 치료하고 회사 쪽이 별도 보상을 해주는 방식)를 하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의사에게 “집에서 다쳤다”고 말해야 했다. 그는 “회사에서 산재 처리를 안 해주면 근로복지공단에 찾아가 직접 신청해야 하는데 그러면 이름이 알려져 다른 조선소에서도 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산재 블랙리스트’다.

우리처럼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산재율은 2.65%(2011년 기준)다. 우리나라는 같은 해 0.65%였다. 독일보다 노동환경이 더 안전한 셈이다. 산재로 인한 사망률을 보면 독일은 10만명당 1.7명(사망만인율 0.17)이었다. 우리나라는 10만명당 7.9명이었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는 독일의 4분의 1 수준인데, 죽는 노동자는 4배가 더 많은 것이다. 오이시디 평균과 비교해봐도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산재율은 0.59%로 전체 평균(2.7%)에 한참 못 미치지만, 산재사망률은 10만명당 6.8명으로 압도적 1위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과정 없이 갑자기 죽는다는 의미일까? 이 격차의 ‘비밀’은 바로 산재의 은폐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망에 이르기 전, 다른 산재는 산재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고의로 산재를 은폐한 사업주를 과태료만이 아니라 형사처벌(1년 이하 징역)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겠다고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만으로는 만연한 산재 은폐를 근절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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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산재율, 더 높은 산재은폐율 은수미 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11~2013년 사내하청 노동자의 건강보험 사용 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추정 산업재해율은 공식 재해율의 평균 23배에 이른다. 사내하청 노동자 38만8475명(이상 3년치 합계)이 3년 동안 병의원을 찾아 에스티(S-T)상병 관련 질병으로 진단받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 급여비가 50만원 이상인 경우를 취합해 분석한 결과다. 에스티상병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코드 가운데 머리, 목, 가슴, 배, 허리, 어깨, 눈 등이 외부 요인에 의해 다치거나 중독된 경우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직장인이 앓는 에스티상병은 대부분 직업성 질병으로 본다.

이렇게 산재 은폐율이 높은 것은 산재 은폐를 부추기는 여러 제도적 허점과 고질적인 원·하청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먼저 불합리한 산재보험료 산정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는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과 사업장에 산재보험료를 더 많이 부담하는 ‘보험료개별실적요율제’(개별요율제)를 적용한다. 산재가 적으면 보험료를 할인받는다. 임준 가천의대 교수(예방의학과)는 “건강보험은 질병 발생 위험이 큰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더 많이 부담시키지 않는다. 사회적 위험을 공동체가 해결하자고 만든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라며 “산재보험도 사회보험이다. 개별요율제는 사회보험의 연대적 원리와 보편적 가치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대형공사 입찰을 할 때 시행하는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제도(PQ)에서 재해율이 낮은 업체에 가산점을 주는 것도, 애초 취지와 달리 공사 수주경쟁이 치열한 건설 현장에선 산재 은폐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하청업체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12월 발표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일터에서 다친 조선·철강·건설플랜트 하청노동자 343명 중 산재 처리가 된 사람은 36명(10.5%)에 그쳤다.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거나 아예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도 122명(35.6%)이나 됐다. 나머지 185명(53.9%)은 원·하청업체의 비용으로 처리(공상처리)됐다. 산재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니 “원·하청업체의 불이익을 우려해서”라는 응답이 39.6%로 가장 많았고, “원·하청업체가 산재보험 처리를 못하게 해서”(29.4%)와 “산재보험 신청 절차가 복잡해서”(9.5%)가 뒤를 이었다.

2014년 11월 경기도 화성시 한 자동차 공장에서 용접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  화성/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014년 11월 경기도 화성시 한 자동차 공장에서 용접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 화성/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원청업체는 산재 발생으로 고용부의 특별감독을 받게 돼 공사기간 등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매우 꺼린다”며 “하청업체에서 산재가 나면 벌점을 부여하고 반복되면 계약을 끊는다”고 말했다. 하청업체에서 사고 때 구급차를 부르지 않아 제 때 치료를 못하거나 기업과 짬짜미를 한 병원으로 노동자를 옮겨 공상처리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유다.

■ 산재보험 제도 수술해야 산재 은폐를 없애려면, 먼저 산재보험 제도를 수술해 별도 절차가 없어도 노동자가 바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는 노동자가 회사의 산재 확인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면 공단이 산재 판정을 한 뒤 보험금을 지급한다. 임준 교수는 “병원에 온 노동자를 첫 진료 할 때 의사가 산업재해분류기준에 따라 산재보험을 적용할지 건강보험을 적용할지 판단하고, 이를 근거로 의사가 근로복지공단에 신고와 급여 청구를 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보험료 개별요율제와 관련해서도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보건실장은 “산재 예방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고 오히려 산재 은폐의 원인으로 지적돼왔다”며 “단기적으로는 하청의 산재를 원청에 포함시켜 보험료를 책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전면개편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노동자의 참여가 산재 은폐를 끊어낼 실질적 수단”이라며 “아무리 강력한 법과 정부의 관리 감독도 노동자의 일상적인 감시체제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 원·하청 노동자가 모두 참여하는 노동자평의회가 산재 예방 등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는 정책을 공동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박종식 연구원은 “고용부의 이번 개정안처럼 형사처벌 조항 도입만으로는 큰 실효성이 없고, 오히려 은폐를 더 부추길 수 있다”며 “정부의 정책 목표를 ‘재해율 수치 낮추기’에서 산재를 많이 발굴해 보상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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