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총독부 자본주의’ 100년

서의동 경제부장

 

한국 경제가 벼랑에 선 이유를 짚어가다 보면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한국 경제와 사회 시스템의 원형질이 이 시기에 완성됐다. 대한제국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일본은 조선에서 ‘식민지형 근대화’를 추진했다. 1910년대에는 농업 식민지와 일본 공업제품의 시장으로 조선을 유지하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기를 맞아 팽창한 일본 경제가 중국 대륙 진출을 꾀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본격 공업화에 착수하게 된다.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금융을 장악했고, 산업정책을 수립해 기업들을 동원했다. 권력과의 유착 속에 경성방직 같은 기업들이 성장을 구가했다. 100년간 유지돼온 관치금융과 재벌체제가 이때 형성됐다.

이 시기 공업화와 자본축적이 진전됐고, 자본주의 유지·발전에 필요한 제도와 인프라가 구축되긴 했지만 ‘총독부 자본주의’는 억압적 권력과 반민주적인 자본이 이끌어가는 불건전성이 본질이다. ‘조선왕조의 지독한 무능과 부패에 절망했던 이들에게는 기회가 됐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긍정 평가한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이 시기는 ‘축복’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제대로 된 성장을 두고두고 방해하는 독소들이 자라던 때였다. 이 분야의 권위자인 카터 에커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1991년 펴낸 <제국의 후예> 중 한 대목이다.

“1945년까지 한국 자본가는 오로지 독재정치 구조 내에서 기업활동을 펼쳐야 했다. 한국 자본가가 해방 후의 세계로 가져온 정치적 지혜는 독재가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며 수익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업화의 식민지적 성격 때문에 한국인 자본가는 더 의식적으로 반민주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노동조합 결성 시도는 박멸의 대상이 됐고, 권력과 경찰은 노사갈등이 벌어지면 이유를 불문하고 기업 편을 들었다. 국가총동원법이 시행된 1938년 이후에는 통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노동운동은 말살됐다.

1945년 해방은 한국 경제가 탈바꿈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미군정은 친일 경찰과 친일 관료를 재등용했고, 지주세력과 손을 잡았다. 잠시 숨죽이던 친일 기업은 다시 득세했고, 노동운동은 더 가혹하게 억압됐다.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총독부 자본주의’는 다시 꽃을 피웠다. 박정희는 조선총독부 이상으로 폭압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했고, 일부 기업에 자원을 집중 배분하는 방식으로 압축적인 공업화를 추진했다. 조선총독부보다 더 철저한 통제경제를 실시했던 만주국에 흡사했다. 당연히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은 상상을 초월했다.

1987년 이후 부분적인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경제분야의 기본 시스템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관료는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권력의 비호 없이 성장하는 기업은 드물었다. 기성 대기업들은 형식적 민주화를 활용해 시장권력을 키워갔다. 노동에 대한 권력과 기업의 태도는 더 악화됐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지난해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형된 징역 8년은 총독부 시절 반체제운동과 공산주의자들에게 가해진 형량보다 더 무겁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는 ‘총독부 자본주의’를 청산할 호기였다. 하지만 경제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 도입된 여러 제도들은 ‘회수를 건너와 탱자가 된 귤’ 신세다. 기업 경영을 감시하기 위해 도입한 사외이사 제도는 정치권 인사와 관료들의 재취업 자리로 변질됐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포스코, KT, KT&G는 권력의 탐욕에 의해 망가져 가고 있다. 한때 민영화의 성공모델로 꼽히던 기업들이다. 이러다 보니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한국에선 열화(劣化)될 수밖에 없다’는 자조와 불신이 쌓인다. 이런 불신은 혁신을 방해한다. 정부가 아무리 의욕적인 정책을 내놔도 ‘일부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될 것 아니냐’는 의심부터 하고 본다. 실제로 그런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변화를 부르짖으며 박근혜 정부가 내놨던 경제민주화의 과제들은 뼛조각만 남아 있다.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실현되리라고 믿는 이는 없다. 분배와 복지를 제대로 하며 사람에게 투자해야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새로운 기회를 찾을 체력을 비축할 수 있음을 머리론 알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려는 관료는 없다. 5년마다 바뀌는 정권에서 어렵고 귀찮은 과제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다. 한국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이들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간도로 떠난 선조들처럼 ‘탈조선’을 감행하고 있다. 몸은 남아 있으되 마음은 이미 한국은 떠난 이들도 주변에 숱하다. ‘총독부 자본주의’ 100년을 청산하지 않으면 한국은 미래가 없다.